이집트 제국의 파라오 람세스 2세가 사망한후
히타이트의 공주 출신이던 왕비가 친정의 모후에게 보낸 점토판 편지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사스의 왕실문서고 유적에서 발굴
위와 같은 점토판을 세계사에 관심이 많다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고대 동부지중해 근해의 문명권에서는 위와 같은 점토판에 문자를 기록해 두었고
그중 일부 언어는 해석에 성공했다
그리고 상당히 많은 수의 점토판들이 지금까지 남아서 발견되고 있는데
국가간 공식문서부터 물건 영수증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며
특히 히타이트 제국의 왕실문서고 유적에서는 2만매에 달하는 점토판이 발굴되어
현재 고고학자들에게는 큰 축복이 되고 있다.
하지만 점토판에 기록했다면 습기에 약할것이고
땅에 묻혀 있다보면 그냥 점토로 돌아가 흔적도 남지 않을텐데
어째서 이렇게 기록들이 잘 남게 된 것일까?
그 이유는 불에 구웠기 때문이었다.
수백도가 넘는 불속에서 구운 점토라서 보존이 잘 되었던 것인데
하지만 원래 이 문서들의 제작자는 점토판을 불에 구울 생각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점토판을 기록한 사람들도 그 점토판과 함께 불탔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불타는 도시에서, 도서관에서, 궁전에서,
그 안에 보관되었던 기록들만 그 뜨거운 겁화에 잘 구워져 남은 것이다
기원전 11세기경 동지중해의 슈퍼파워 였던 히타이트와 이집트
지금으로 부터 3200년전
기원전 11세기 동지중해는 청동기를 바탕으로 한 고대 문명들이 전성기를 맞고 있었다.
특히 이집트 제국과 히타이트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과 눈부신 선진 문화로 슈퍼파워로 군림하고 있었다
양국은 수십년전까지만 해도 시리아의 패권을 두고 대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카데시 전투 직후 양국은 기록상 세계최초의 평화협정인 카데시 협정을 맺고
히타이트 공주와 이집트의 람세스2세가 혼인하면서 전쟁은 막을 내렸으나
그 이후 양국은 수십년째 불안정한 평화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며
수많은 군소 국가들이 그들을 맹주로 하여 두편으로 나뉘어 있었다.
(카데시 협정의 협정문이 새겨진 석판이 아직까지 남아있으며 그 석판의 복사본이 UN본부에 걸려있다)
그 국가들은 모두 역사 속 여느 제국들이 다 그렇듯 궁극적으로는 결국 몰락해 스러졌다.
문명인의 척도였던 청동기는 서서히 철기로 대체되었으며 이후 문명들은 철기에 기반을 두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몰락’과 ‘기술전환’은 자연스럽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서히 바뀌며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몰락은 급작스럽고, 파괴적이었으며, 범-국가적인 대재앙 을 통해 찾아왔다
남은 폐허를 바탕으로 만든 히타이트의 수도 하투사스의 추정도
기원전 11세기
미케네등으로 알려진 이오니아(그리스)의 마이세니아 문명권
아나톨리아와 시리아를 지배하며 슈퍼파워로 군림하던 군사강국 히타이트
독특하며 독자적인 문화권으로 성장해가던 키프로스 등
동부 지중해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거의 동시에 멸망했으며
가자지구에서 트로이에 이르는 인구 1만이상의 도시들과 경제구역은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 되었는데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모든 지역에서
방화와 학살의 흔적이 발견되었고 학살당한 수많은 시신이 발굴되었다
타국가들을 압도하는 경제력과 눈부신 문화를 자랑하던 또 하나의 슈퍼파워 이집트
단 한나라 만이 살아남았으나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며
다시는 이전의 슈퍼파워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쇠퇴해 버렸다.
이 시기 동부 지중해의 고대국가들의 유적에서는 하나도 빠짐없이
고고학에서 말하는 "파괴지층"이 나타난다.
마치 공룡멸망시의 생겨난 KT단면처럼 하나의 지층에서 모든 파괴된 문명의 흔적을 찾을수 있는 것이다.
하투사스에서 발굴된 "사자의 문", 불에 탄 흔적이 남아있다
히타이트는 철저히 파괴되어
당시 세계에서 유일하게 "강철"을 생산할 수 있는 용광로가 있던
수도 하투사스는 영원히 버려진 도시 가 되었고
제2의 도시였던 카라오글란 의 발굴결과
정리되지 않은 수많은 학살당한 사람들의 시신이 도시를 메우고 있엇다.
히타이트 제국은 이렇게 철저히 멸망하여 19~20세기에 들어서야 발굴을 통해 존재가 확인될 정도였다
(성경에 표현된 "헷 사람"은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후 생존자들이 훗날 세운 히타이트계 도시들을 가르킨다)
키프로스 문명의 흔적은 아예 지워져 버렸다
마이세니아 문명으로 불리우는 미케네를 비롯한 그리스의 수많은 도시국가들은 모조리 멸망했으며
현재 연구에 따르면 그리스 인구의 90%가 죽거나 멀리 도망쳤다고 추정 된다.
(과거에는 도리아인의 남하로 멸망했다는 학설이 유력했으나 현재는 부정되고 있다)
미케네유적에서 발굴된 황금 데드마스크
이를 발굴한 슐리만은 이게 일리아드에 나오는 미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얼굴이라 생각했다
이집트의 경우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나 생존하는데는 성공했다.
당시 이집트의 파라오이던 람세스 3세의 무덤과 신전에 남겨진 기록들에는
이집트를 멸망의 위기에서 구해낸 파라오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집트는 그야말로 ‘간신히’ 형체만 살아남았을 뿐이었다.
흔히 도시가 멸망해도 기반 시설은 남아있기 마련이라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것 보다 재건이 더 쉬우므로 다른 민족이나 난민들이 다시 돌아와 재건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때 파괴된 국가와 도시들은 다시는 재건되지 않았다.
파괴된 이후 난민촌 비슷하게 운영된 흔적이 남아있는 도시가 발견되긴 하지만
얼마 안되어 그마저도 다시 파괴되고 사람들은 죽음을 당했다.
람세스 3세의 부조
문명이 발달하면 자연스레 생기는 국제 장거리 무역들도
갑작스럽게, 모조리 끝장났으며 해상무역, 육상무역 모두 차단되었다.
이러한 국제 무역은 수백년 후에야 재개될 수 있었다
그러한 국제 무역에 의존하던 도시들은 공격을 피했다 하더라도 곧 몰락해 버려졌다.
무역이 중단되자 살아남은 나라들 입장에서는 수입에 의존해야하는 청동기의 사용이 힘들어졌다.
청동기 수출처와 수입처와의 거래가 끊겼다. 수출처는 멸망당했다.
자연스레 사람들은 질 나쁘지만 흔하고 값 싼 철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이 당시 철기는 청동기에 비해 전혀 메리트가 없는 금속이었다.
조잡한 연철이라 강도도 청동기만 못하고 만드는 것도 청동기보다 불편했으며
녹까지 잘슬어 유지도 청동기에 비교가 안됬다
하투사스에서 제작된 철기만이 청동기보다 우월했으나
하투사스의 지형을 이용한 특별한 용광로가 아니라면
그 정도의 철기를 제련할 수 있는 온도를 내는게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히타이트가 멸망하고 하투사스가 폐허가 된 이상
당시로서는 청동기보다 우월한 철기는 없었다.
선형문자-b(Linear B Tablet)
이 사진은 흔히 선형문자-b 로 불리우는 문자가 적힌 점토판이며
지금으로 부터 3500년 전인 기원전 15세기부터 11세기까지 약 400년간
"마이세니아 문명" 즉 "미케네 문명"에서 쓰여진 문자이다.
하지만 이 문서에 대한 해독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아마 로제타 스톤과 같은 큰 발견이 없는 이상 앞으로도 해석되긴 힘들거라 추정된다
또한 문자도 사라졌다.
위의 사진에 나온 선형문자-b도 그중 하나이다.
워낙 갑작스럽게 순식간에 멸망한 데다가
글을 안다 해도 쓸 여력도 없었고 가르칠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문자는 잊혀졌고 살아남은 이들은 모두 문맹이 되어 역사기록은 멈춰졌다.
특히 그리스의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해서 이후 400년간 아무런 기록이 남지 않았는데
이를 그리스 역사에서는 "암흑시대"라 부르며
다만 구전으로 전해오던 설화들이 훗날 호메로스에 의해 정리되고 기록된게 남아 있는게 전부 이다.
그렇게 새로운 문자가 탄생하여 역사 기록이 재시작될때까지 짧게는 수십에서 길게는 수백년이 걸렸다.
예술 역시 퇴보하거나 실전되어 버렸다.
고고학적으로 동지중해 문화권에서
기원전 1150년 이후 제작된 고급공예품이나 도자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후 만들어진 생활용품들도 실로 조잡하기 짝이 없어졌으며
미술품이나 조각역시 더이상 만들어 지지 않았다
건축이나 축성기술 역시 맥이 끊겨 이전 수준의 발달된 건축물은 수십~수백년간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아포칼립스(Apocalypse)
즉 세계의 종말이었다.
대체 이런 비극의 원인은 무었이며 왜 일어나게 된 것인가?
당연히 누구나 궁금해 할만한 질문일 것이다.
여기에 학자들은 수많은 학설들을 제시하며 그 답을 찾으려 했다.
산토리니 화산폭발로 인한 기후변화, 인구증가에 따른 체제변환 실패
여러가지 학설들이 제시되었으나
모든 학설들에서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원인이 있다.
바로 "바다 사람(海人)" 이라고 기록된 이들의 대대적인 침공
그들이 누구였는지 의견은 분분하다
서부 지중해 민족이라는 학설부터 영국인근에서 내려온 민족이라는 학설까지..
확실한건 누구라도 추정만 할 뿐 그들이 누군지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남아있는 수많은 기록에서 그들의 침공을 표현하고 있다
고대도시 필로스에서 발견된 점토판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바다의 약탈자들이 관측되었다! 보초병들을 급파하고 해안 요새들의 방어를 강화하라!"
"각 신전들에 전령을 파견해 청동 성물들을 가져와라! 창을 만들 청동이 부족하다"
신에게 제물로 바쳐진 성물까지 녹여야 할 정도로 급박했던 것이리라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필리스는 멸망하고 불타올랐다
당시 동지중해 문화권 전체가 이들의 공격을 동시다발적으로 받았으며
그들의 공격에 시리아지역이 초토화 되었고
어제의 적이었던 이집트와 히타이트는 공동의 적 앞에 연합하여 맞섯으나 역부족이었다.
형편이 좀 낫던 이집트의 막대한 경제지원에도 불구하고 히타이트는 멸망위기로 몰렸는데
그 기록또한 남아있다
“케타 지방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히타이트에 식량을 보낸다”
히타이트와 이집트가 본국방어에도 힘겨워할때
그들을 종주국으로 하던 군소국가들은 모조리 멸망의 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지금의 시리아 지방에 위치했던 상업 중심지이자 주요 대도시였던 우가리트에서 발견된 점토판들은
또 다른 기록들을 보여주는데, 그 기록들에 담긴 공포와 상황의 위급함은 읽는 이를 섬뜩하게 한다.
우가리트의 왕궁 유적, 왕궁의 입구로 추정된다
우가리트의 그 기록은 또 다른 도시인 알라시아의 왕이 보낸 구원요청에 대한 응답 편지였다
"도와줄 수 없소. 적의 함선들이 몰려와 내 마을들을 불태우고 매우 악랄한 짓들을 내 나라에 행했소.
내 모든 병력과 전차들은 하티(히타이트 제국의 중심 지방)를 돕기 위해 파견되어있고,
내 모든 전함들은 루카 지방을 지키기 위해 나가있소.
내 나라는 지금 버려진 상태요! 어제 여기 온 일곱 척의 적함들이 이곳에 많은 피해를 끼쳤소.”
히타이트에 조공을 바치던 우가리트가 오히려 히타이트를 돕기 위해 구원병을 파병해야 될 정도로
히타이트 제국이 동시기에 위급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히타이트를 도우러 갔던 우가리트의 군대는 필시 히타이트 제국과 함께 소멸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편지가 알라시아에 보내지기도 전에 우가리트는 멸망했다.
또한 우가리트에 이어 알라시아 또한 얼마 후 멸망당했다.
우가리트에서 발굴된 또 다른 기록은 카르케미쉬에서 보내온 편지였다.
그 (점토판) 편지는 우가리트가 요청한 구원요청을 카르케미쉬의 총독이 거절하는 내용이다.
“그러니까, 적의 배들이 해안에 출몰했단 말이오?
에, 그러니까, 힘내시오. 최선을 다해 버티시오!
그대 왕국의 군대와 전차들은 다 어디 갔단 말이오? 근처에 주둔하고 있지 않단 말이오?
그대의 마을들을 방책으로 둘러싸고 방어하시오.
모든 병력을 송환하여 용기를 가지고 적을 막아내시오!”
카르케미쉬의 총독도 몇마디 조언 외에는 우가리트를 도와줄 수단이 없었다.
그들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카르케미쉬 역시 얼마후 멸망했다.
이들의 공격을 망신창이가 되어가며 결국 막아내는데 성공한 이집트에도 이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람세스 3세의 업적이 기록되어 있는 메디네트 하부 신전
“바다에서 온 자들이 음모를 꾸몄다.
그들의 공격에 모든 땅과 사람들이 모래처럼 흩어졌다.
그들의 공격에 견딜 수 있는 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히타이트, 아르자와, 알라시아, 카르케미쉬 모두 멸망당했다.
아무루 지방의 사람들은 모조리 몰살당해 마치 처음부터 존재한 적 없는 것 같은 땅이 되었다.
그들은 이제 이집트를 향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폐하께서는 그들을 위해 불꽃을 준비해두셨다...”
어쨋거나 이집트는 결국 이들의 공격에서 살아남았다.
이겼다기 보다는 말그대로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그 "바다 사람"들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동지중해 해안의 모든 문명과 국가를 파괴한 "바다 사람"은 내륙으로 들어가
메소포타미아의 강국이던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 인근까지 진격하는 저력을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들은 거짓말처럼 사라져 버렸다.
보통 고대부터 침략자들은 다른 국가를 멸망시키고 나면
적의 땅을 차지하고 적의 국민을 노예로 삼아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마련인데
이들은 파괴와 학살만을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역사에서 사라져 버렸다.
성경에 나오는 "골리앗"으로 대표되는 블레셋 사람이 바로 펠레세트 인이며
유대인이나 펠레세트(팔레스타인)인이나
둘다 주류 문명이 모두 파괴되고 텅빈 시리아 일대에 새로 정착한 민족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이들이었다
이집트의 기록에는 여러 계파로 구성된 바다 사람 중
유일하게 사라지지 않고 정착한 "펠레세트인"을 기록에 남기고 있는데
이들은 현재 "팔레스타인"의 조상인 민족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바다 사람에게 쫒겨 도망와서 새로 자리잡은 피해자라는 학설도 제기되는등
확실하진 않은 상태이다.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오안네스
인간의 머리와 팔다리에 물고기의 몸을 하고 있는 존재들로써
낮에는 육지에 머물러 수메르인들에게 문명과 수많은 유용한 지식을 전해주고
밤에는 자신들의 은식처인 바다로 돌아갔다고 한다.
오안네스들에게는 자신들만의 언어와 문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너무나 극적인 등장과 퇴장으로 이들에 대한 추측이 계속되고 있다.
오컬트에 심취한 이들은 멸망한 대부분의 도시에서 발견된는 불탄 흔적을 보고
고대의 핵전쟁이라 주장하기도 하고
수메르 신화에 등장하는 "오안네스(물고기 사람)"이 "바다 사람"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상당수의 학자들은 서부 지중해 유역의 해양민족들의 연합이라고 추정하고 있으나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러운 등장과 퇴장은 누구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을 확실하게 설명할 방법은 아직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기원전 11세기 동지중해의 빛나던 청동기 문명은
정체불명의 이유와 세력에 의해 흔적을 찾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모조리 멸망했으며
고고학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서야 그들이 남긴 첫 실마리를 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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